커리어와 가족 두 개의 큰 주제에 대해 주요 내용을 서술한 뒤, 다음 세가지 카테고리로 작년 한 해에 대한 회고를 정리하고자 한다.
- 지속할 것
- 개선할 것
- 시도할 것 (주로 2에 대해)
커리어
감사하고 또 과분하게도 2021년 말에는 평소 애정해 마지않던 다수의 업체들로부터 합류 제안을 받았다. 심사숙고 끝에 01월 26일부터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직무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직처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크게 염두했던 요소는 조직이 내게 허용할 수 있는 “자율성”의 정도였다. 내게 주어진 시간 대비 더욱 압축적인 경험을 누적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데, 조직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위험 부담을 수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으려면 응당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그만큼의 설득력을 갖추는 것이 합당하다.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직종을 전환한 뒤의 3년은 바로 나라는 상품으로 시장을 설득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이론적인 기여보다는 구현하며 실체화하는 방향이었기에 연구자 중심의 조직보다는 개발자 중심의 조직에서 좀 더 설득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입사를 결정한 조직은 개발 조직이 갖춰져있는 반면, 머신러닝 조직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다.
업무를 시작하고 처음 파악하려 했던 것은 조직이 가지고 있는 고통(Pain Point) 중에서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찾는 것이었다. 크게 조직에서 필요한 기술과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일련의 문제를 정의한 뒤, 점진적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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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IDC 셋업 서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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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 Detection, Segmentation Task의 이미지 자동 레이블링을 위한 알고리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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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서비스 구조 설계 - Kubernetes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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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active Session 용도의 개발용 GPU 클러스터 셋업 - Slurm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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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 Staging, Production 환경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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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 관리 시스템 및 CI / CD 구축. - Docker, GHCR, GitHub Actions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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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밸런싱, 무중단 배포, 모니터링, 오토 스케일링 기능을 포함한 마이크로서비스 구조의 고성능 추론 서비스 구축. - FastAPI, Echo, Triton, DCGM, Traefik, ArgoCD, Argo-Rollouts, Grafana, Prometheus, Promtail, Knative 등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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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발명자로 특허 두 건 등록.
조직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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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업체와의 채용 파트너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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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러닝 팀 빌딩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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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산출물 중앙화를 위한 모노레포 셋업 및 업무체계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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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버전관리 시스템 셋업 - Share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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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EE-830-1998 표준 기반으로 제품 요구사항 명세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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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3인, 디자이너 1인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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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조직 셋업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휴먼이슈 관리 (일에 쏟은 모든 노력의 절반 이상을 이 하나의 항목에 투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조직에서보다 넓은 업무 범주를 커버했던 한 해였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랐던 적도 참 많았지만 사측으로부터의 무한한 신뢰 덕분에 당면한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족
둘째 아이가 막 뒤집기를 시작했던 3월, 우리 가족은 예상치 못한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03월 10일부터 둘째의 체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동네 소아과 선생님의 권유에 아내가 둘째를 데리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 이후로 갑작스럽게 가족의 생이별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뒤 한 주 동안 아이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복수가 차기 시작하면서 온 몸이 붓고 체중은 1kg 이상 늘어났으며 체온은 줄곧 40도 근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골수검사로부터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03월 17일)
좀 더 시간이 흐르고 골수검사의 세부적인 결과를 확인하며 정확한 병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혈병 중에서도 예후가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AML) M7이라는 분류였다.
처음 한동안은 갑작스럽게 마주한 상황에 혼란을 느끼고 백혈병의 실체를 파헤치며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03월부터 12월까지 5번의 항암치료, 조혈모세포 이식, 이식 후 재발 등의 사건을 겪으면서 차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에게 주어진 생활에 충실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장 처음 적응해야 했던 것은 일과 육아의 병행이었다. 첫째 아이의 등하원을 위해 회사에 양해를 구하여 10 to 05로 근무시간을 변경하고 모자란 근무시간은 주말에 보충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번갈아 받으며 업무 또는 개인 공부를 하거나 간간이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주말 잠깐 동안의 보충 공부만으로는 업무에 필요한 신문물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위 커리어 항목에서 서술한 기술 스택 중 Docker, GHCR, GitHub Actions 외에는 모두 이번 직장에서 초면). 다행히 여러가지 생활패턴의 시도 끝에 건강하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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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21시: 하원후 아이와 함께 시간 보내기 (또는 병원으로 보급품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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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05시: 취침 (컨디션에 따라 6시까지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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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08시: 아이 등원준비 전까지 개인시간 (업무 / 공부 / 운동)
그렇게 첫째 아이와 규칙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면서 주 양육자가 아내에서 나로 슬금슬금 교체되는 신묘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첫째 아이가 외줄타기 같은 나의 인생을 잡아주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었다. 첫째의 적극적인 배려와 협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생활이 절대로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으로 건강하게 자신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첫째 아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한없이 위태로운 나 개인의 삶이 결국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까닭은 가정에 귀속된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의 영역에서 주어진 생활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득 아내 입장에서 회고한 22년도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준서의 근황은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회고
지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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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야근보다는 조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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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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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은
그날 일과 전까지
라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있으므로 규칙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 -
명확한 데드라인은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야근의 경우 데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일이 늘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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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하므로 계획을 짜기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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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인 정신과 상담으로 생활의 안정성을 높게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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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을 가진 제 3자의 개입을 통해 내 심리상태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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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내 정신 건강에 대한 추적 관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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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 등을 통해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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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원칙을 정확히 공시하고 준수하여 업무 태도의 안정성을 높게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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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은 내가 말하지 않는 한 직장의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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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이유를 생각하기에 앞서 되는 방향으로 먼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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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업무는 명시적인 산출물(e.g. 작동하는 코드/문서/데모) 기반으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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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적인 산출물을 기반으로 자주 논의하고 자주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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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리뷰는 리뷰어 중심으로 진행한다. 리뷰어는 작업자의 소중한 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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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성장과 함께 구성원 개개인 또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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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탁월성과 좋은 설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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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간의 충돌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의 면대면 대화를 최우선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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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자기관리로 높은 스트레스 역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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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3회 이상 운동 (스쿼트, 로잉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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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복용 (프로바이오틱스, 칼슘, 마크네슘, 종합 비타민, 오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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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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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습관적인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낮은 수면품질과 시력 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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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배달음식 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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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으로 인한 장시간의 앉은 자세로 경추, 요추 디스크 악화.